제1테마 홋카이도120 만 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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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홋카이도의 역사는 짧다고 하곤 합니다. 개척이 시작되어 많은 이주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지는 불과 150년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쿠가와 막부에 마쓰마에번이 아이누 민족과의 교역으로 얻은 해달의 모피를 진상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처럼 선주민족 아이누의 교역 활동 등 홋카이도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일본사의 이미지와는 다른 독자적인 역사를 이루어 오고 있었습니다. 길고 긴 홋카이도 역사의 발자취를 120만 년 전부터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1테마 홋카이도120 만 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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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류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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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홋카이도의 독자적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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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에조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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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에조치부터 홋카이도로

전시물 소개

스텔러바다소의 부모와 자식

스텔러바다소의 부모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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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러바다소는 차가운 바다에 살았던 바다소의 일종입니다. 얕은 여울에 자라는 다시마 등의 해초를 먹는 초식성으로, 몸의 길이는 최대 8미터에 달합니다. 몸에 비축한 대량의 지방에 의한 부력으로, 항상 등의 일부가 해수면 위로 나와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747(엔쿄4)년에 인간의 사냥에 의해 절멸되었습니다. 기타히로시마시에 있는 약 120만년 전의 지층에서는 스텔러바다소의 밑 턱의 뼈나 팔의 뼈, 갈비뼈의 화석이 발견 되어, 그 안에는 새끼의 뼈도 있었습니다.

코끼리 이빨의 신기함! (나우만 코끼리・매머드 코끼리)

코끼리 이빨의 신기함! (나우만 코끼리・매머드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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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화석 속에서, 가장 많이 발견 되고 있는 것은 [이빨]입니다. 이빨은 매우 강하고 단단하므로, 화석으로 남기 쉬우며 이빨을 자세히 조사함으로서 연령이나 종류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는 전부 32개 정도인데, 코끼리는 윗 턱, 아래 턱 각각 2개, 전부 4개의 큰 이빨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 까지 5번이나 이빨이 새로 납니다. 대량의 풀 등을 하루종일 먹으며 생활하므로 이빨이 빨리 닳기 때문에 몇번이고 새로운 이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홋카이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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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서도 조몬문화 초기 부터 토기의 사용이 시작되는 것을 알려주는 중요한 토기입니다. 문양은 융기선문형, 모양은 발형으로 아래부분이 뾰족하며 혼슈의 토기문화가 전혀져왔다고 추정됩니다. 오비히로시의 다이쇼3유적에서는 석기 등도 출토되어 초기의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

그림이 새겨진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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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곱페 동굴에 그려진 벽화는 일본 최대급입니다. 그려진 각화는 인물이 많고 이 암편에도 2명의 추상적인 인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암편은 동굴내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옹형토기

옹형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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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기 경의 홋카이도에서는 오호츠크 문화가 사할린에서 홋카이도의 오호츠크 해안, 그리고 쿠릴열도에도 퍼지게 됩니다. 사할린과 홋카이도에서는 오호츠크문화의 존족하는 시기나 유적의 분포에 차이가 보이며 홋카이도에서는 특유의 토기도 만들어지게 됩니다.

에조치의 특산물 콜렉션

에조치의 특산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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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바다사자의 가죽. 깨처럼 생긴 무늬가 있는 바다표범의 가죽. 검은 것은 곰의 모피인가? 여러 가지 모피와 바다에서 나는 것들의 총집합. 독수리의 날개부터 학까지 있습니다. 이것들은 전부 아이누민족이 와진과 교역을 하기 위해 사냥한 것입니다. 한편 아이누 민족이 와진에게서 얻은 것은 쌀, 술, 담배, 철제 도구, 칠기, 무명 등입니다. 아이누민족과 와진은 활발히 교역을 하였고 서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교환했습니다.

프로비던스호

프로비던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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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는 1796(간세이8)년에 에토모(현재의 무로란시)에 내항한 영국선 프로빈스호의 1/64의 모형입니다. 런던에 있는 글리닛지 국립해사박물관이 소장하는 설계도를 바탕으로 복원 된 모형(무로란시민 자료관소장)을 원자료로 1992(헤이세이4)년에 만든 것입니다. 실물은 목조 범선으로 길이 약 32.6m, 폭 8.8m이었습니다.

오무샤

오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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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투시도는 1808(문화5)년애 사할린에서 카이즈한이 시행한 오무샤를 재현한 것입니다. 오무샤란, 원래 오래 알던 사람에게 재회했을 때 증답인사를 말했는데, 점차 일본인이 정한 것을 아이누의 사람들에게 듣게 하여서, 술이나 담배, 쌀 등을 주는 정치적 의례가 되었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것은 일본인의 아이누어 통역이며 건물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이누의 장로들입니다. 의식 후에는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개척사 삿포로 본청사

개척사 삿포로 본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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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메이지2)년, 메이지 신정부는 초원과 숲에 둘러싸인 벌판이었던 현재의 삿포로를, 홋카이도의 정치의 중심지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마을 만들기 안에서, 관청이나 학교, 고용 외국인교사의 관사 등에는 서양풍의 건축스타일이 도입 됐고, 삿포로 중심부는 미국 동부의 도시와 같은 분위기가 되어갔습니다. 그 상징적인 건물로서 1873(메이지6)년 10월에는 개척사 삿포로본청사가 완성 되었습니다.

마쓰우라 다케시로가 에조치조사의 성과를 정리하여 출판한 책

마쓰우라 다케시로가 에조치조사의 성과를 정리하여 출판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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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끝 무렵, 개인으로서 3번, 에도막부에 고용되어 3번, 에조치를 조사한 이세국(현재의 미에현) 출신의 마쓰우라 타케시로는 에조치의 모습을 세상에 널리 소개하기 위해 여행 일기를 출판하였습니다. “이시카리 일지”, “테시오 일지”등으로 이름 지어진 그 책들에는 여러 가지 삽화와 함께 에조치의 풍경이나 동식물, 에조치에 사는 아이누민족의 모습 등이 표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