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홋카이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 바다와 대지의 은혜로운 여러 명물들, 겨울에 실내의 온도를 매우 따뜻하게 하는 생활 스타일 등. 현재의 홋카이도에는 다양한 〈홋카이도 스타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 홋카이도다운 모습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제3테마 홋카이도 스타일의 비밀
전시물 소개
홋카이도 조감도 병풍
홋카이도 조감도 병풍

조감도는 새가 하늘을 날아오른 것처럼 높은 곳에서 지리와 풍경을 내려다 보듯이 그린 그림의 일종입니다. 이 그림은 다이쇼시대(1912~1926)의 중반부터 쇼와(1926~1989) 20년대에 걸쳐 많은 조감도를 그린 요시다 하쓰사부로가 1936(쇼와 11)년에 완성시킨 작품으로, 병풍으로 남아 있습니다. 큰 바다, 산천과 호수, 개척지, 도시, 철도와 연락선, 온천의 연기, 그리고 멀리 보이는 대륙과 사할린(가라후토), 쿠릴 열도 … 볼만한 곳이 아주 많습니다.
농업의 왕국으로
농업의 왕국으로

개척사는 광활하고 추운 홋카이도에서 밭 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서양식의 농업기술을 도입하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삿포로 농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 후에도 다양한 품종개량과 기술 개선 뿐만 아니라 프라우(쟁기) 등의 서양식 농기구를 말에게 끌게하여 논밭을 갈게 하고 수확은 손으로 하는 등의 홋카이도다운 농업 형태가 형성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홋카이도의 광대한 토지를 이용한 밭 농사, 벼 농사, 낙농의 기초가 구축되었고, 지금의 홋카이도는 명실상부한 농업의 왕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한 번에 많은 양의 청어를 삶기 위한 가마솥
한 번에 많은 양의 청어를 삶기 위한 가마솥

잡힌 청어의 대부분은 “시메카스(깻묵)”이라고 하는 비료로 가공되었습니다. “청어 찌꺼기”라고도 합니다. 이 큰 가마솥은 한 번에 대량의 청어를 삶기 위한 것으로 “청어 가마솥” 으로도 불립니다. 청어 가마솥의 대부분은 도야마현 다카오카 지방에서 제조된 것입니다.
쇼와 10년대 무렵의 채굴 현장의 모습
쇼와 10년대 무렵의 채굴 현장의 모습

메이지(1868~1912)에서 다이쇼 시대(1912~1926)의 탄광에서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석탄을 석탄을 파는 채굴 방식이 이루어졌습니다. 석탄을 채굴하는 현장인 <막장>에서는 <선산>,<후산>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몇 명으로 이루어진 1조가 되어, 곡괭이, 절도, 정 등의 도구를 사용하여 석탄을 채굴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에는 착암기와 콜 피크나 콜 드릴 등의 기계를 사용하게 되어 석탄을 효율적으로 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톱밥에 의해 막히는 것을 방지해주는 「구덩이」가 달린 톱
톱밥에 의해 막히는 것을 방지해주는 「구덩이」가 달린 톱

이 톱에는 나무를 자르는 톱니 부분 뒤에 톱밥을 모으는 오니바와 톱밥의 막힘을 방지하는 움푹 패인 구덩이(쿠보미)가 달려 있습니다. <마도노코> 라고도 불리며 그 전까지의 톱과 비교해 밀고 당김이 가벼워지고, 단단한 나무가 잘 베어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이런 장점을 살려, 마도노코의 움푹 패인 곳의 수를 점점 늘려, 마도노코의 톱니는 6장 뺀 것, 4장 뺀 것, 2장 뺀 것으로 진화하였습니다.
나무 패 놀이 백인일수(百人一首 : 100 개의 일본 전통 음악(和歌 : 와카)이 적힌 일본 전통의 카드 게임)
나무 패 놀이 백인일수(百人一首 : 100 개의 일본 전통 음악(和歌 : 와카)이 적힌 일본 전통의 카드 게임)

백인일수라고 하면,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오구라산의 산장에서 선택했다고 하는 오구라 백인일수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는 오구라 백인일수의 도리후다(取札 : 집는 카드 )로서 후박나무 등의 나무 패에 시모노쿠(下の句: 와카의 넷째와 다섯째 구)를 흘려 쓴 <이타 가루타>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가루타는 메이지 중기 무렵부터 농어촌을 불문하고 겨울의 실내 오락으로 유행했습니다. 게임 방법은 가미노쿠(上の句 : 와카의 첫 5·7·5의 3구)가 아닌 시모노쿠를 읽고 목패를 서로 빼앗습니다. 이 게임 방법으로부터 <시모노쿠 가루타>라고도 불려집니다. *가루타 : 카드를 뜻하는 포루투갈어 carta에서 유래
다양한 제설 도구
다양한 제설 도구

제설작업에는 주걱 모양의 전용 도구나 철제의 삽이 사용되었습니다. 주걱 모양의 도구는 나무나 대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코스키>, <카에스키>, <유키카키>, <죤바> 등으로 불렸습니다. 제설 장비 중에는 말에게 끌게 하는 <삼각썰매>나 눈을 밟아 굳히는 도구도 볼 수 있습니다. 1950(쇼와25)년 무렵이 되면, 철도의 역 구내를 중심으로 <유키오시(눈 밀대)>라고 하는 도구가 고안되었습니다. 이 형태는 <마마산 덤프>나 <스노우 덤프>등으로 상품화 되어 일본의 적설 지역의 일반 가정에 보급되었습니다.
삼등객차의 안을 들여다보자
삼등객차의 안을 들여다보자

객차의 난방은 전기와 스팀난방이 보급될 때 까지 달마스토브나 타코스토브 등으로 불리는 석탄 난로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난로 있는 객차는 홋카이도에서 1892(메이지 25)년 겨울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약 80년간 승객들에게 친근해졌습니다. 석탄을 보충할 때에는 데렛키,부삽, 석탄함 세 종류의 도구가 사용되었습니다. 한편, 바닥에 있는 구멍은 청소할 때 쓸어 담는 곳이었지만 승객 중에는 가래를 뱉는 통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곰이 따라오지 않게 하기 위해 불었던 나팔
곰이 따라오지 않게 하기 위해 불었던 나팔

우편 배달원부터 시작해서 홋카이도 도청의 공무원, 영림서(현 삼림관리서) 직원까지 곰이 출몰하는 위험한 지역을 통행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곰을 피하기 위하여 나팔을 불었습니다. 홋카이도에서는 이런 <구마요케랏빠(곰을 피하기 위한 나팔)>가 메이지시대(1868~1912)부터 쇼와(1926~1989) 30~40년대까지 필요했다고 합니다.
〈산페이 시루〉를 먹는데에 사용된 접시
〈산페이 시루〉를 먹는데에 사용된 접시
